살아오는 환경의 중요성은 누구나 듣고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나도 그정도의 생각이나 이해 정도는 가지고 있다.
그런데 오늘은 이걸 좀 캐보고 싶다.
내가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를.

생활 중에 문득 문득 드는 생각 중에
‘내가 너무 저 자세로 임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경우가 있다.
청소하는 아주머니, 경비 아저씨들, 환자들, 백화점에서 지나치는 사람들을 마주할 때.
상대편을 배려하려는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저 자세’, 어떤 면에서는 스스로 너무 굴욕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할 때가 있다.
집 사람이 이렇게 지적한다.
나는 나를 스스로 볼 수가 없다.
남들에게 비춰지는 모습이 겸손하고 배려심 있게 비춰지고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자신감이 떨어지거나 위축된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으로 보이는 것 같다.

아내의 말을 참고한 후로 나 스스로도 나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발렛에서 차 키를 가져다 주는 사람보다 허리를 더 굽혀서 공손히 열쇠를 받는 나.
백화점에서 내 갈 길을 앞도 보지 않고 오는 여자들을 위해 먼저 멀리서 부터 길을 비켜주는 나.
그 외에도 내가 돌이켜봐도 너무 과한 면이 있다고 느껴지는 특정 상황들이 있다.
그것도 반복적인 상황이다.

문제로 파악하자면 문제긴 하다.
물론 상대편에서는 불편할 것이 없을 것이다.
내가 오히려 알아서 기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내가 파악한 원인은 바로 남들로 부터의 시선이다.
나는 내가 생각해도 남들의 시선을 굉장히 신경 써 왔던 것이다.
크게는 남들에게 잘 보이려고 공부도 열심히 했고, 노력했던 것 같다.
나를 만족시키는 목적도 있었지만, 생각해보면 남들이 무시하는게 두려워 열심히 한 면도 있었다.
그러한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그것을 내 기준으로 정해서 완성하고 나면 오히려 내가 성장한 면이 있었다.
그런 생활을 지금까지 해왔다.

집 사람은 다르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려다 말아버린 경우다.
나는 주로 서비스를 제공했다면, 집 사람은 받아오기만 했다.
대접 받는 것이 익숙하니 거만할 수도 있겠다싶었다.
하지만 부탁이나 요구에 있어 당당하기는 하나 정중하고 고상했다.
나는 원래는 안되는데 되게 해달라는 뉘앙스의 찌질함이 간혹 보인다면 집사람은 그런 것이 없다.
집사람 욕을 먹을만 하다.

동기들이나 친구들도 나와는 별반 차이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안심을 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주위 원장님들이나 교수님들을 보면 다르다.
집사람, 원장님들, 교수님들은 대접을 받아온 충분한 시간에 의해 그런 것인지 나와는 사뭇 다르다.

내가 낮아져 상대를 편하게 하는 방법이 좋다고 생각했다면 지금부터는 내가 굳이 낮아지지 않더라도 상대를 존중하면서 배려한다는 느낌을 받게 하고싶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배려하는 상대가 결코 낮은 위치나 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할 것 같다.
내 배려 상대를 곰곰히 보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이나 여성, 노약자들이다.
머리속에서 별 생각 없이 이런 사람들은 ‘약하고, 힘들 것이다.’라고 인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까?

나도 병원에서 서비스를 제공한다.
내가 상대에 비해 약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적절하지는 않지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이라고 약자는 아니다.

그리고 여자.
여자들은 배려를 베풀고 나면 기분이 나쁘다.
오히려 배려 뒤에는 내가 더 약한 존재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강하게 뒤통수를 후려친다.
혼자면서도, 단 둘이 이야기를 하면서도 앞을 안보고 어깨를 강하게 부딪히는 여자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이들을 챙기면서 돌아다니는 경우에 가끔 부딪히는 경험을 하는데,
서로 미안해할 상황에 일방적으로 인상을 구기고 가는 여자들을 수차례 경험하게 되면
‘내가 잘못한건가?’
‘여자들은 다 저렇게 생각하나?’
궁금증을 갖게 된다.
한 때는 너무 기분이 나빠서 이틀 동안 출퇴근 때 이 같은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어르신들.
어르신들은 배려도 배려지만 그냥 피하고싶은 생각이 앞서는 것 같다.
버릇없는 생각일지 모르지만 남들로부터의 시선에 민감한 내가 어르신들과 마주치는 경우 피곤한 일만 생길 뿐이기 때문이다.
버스에 타더라도 아예 가장 맨 앞자리 양쪽 두 곳 이외는 앉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가장 불편한 자리이기 때문에 어르신들은 여기에 자리가 나도 타기가 힘들기 때문에 뒷쪽으로 이동하신다.
난 이 두 자리가 나지 않으면 아예 집까지 서서 가는 경우도 있다.

조금 과한 면이 있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 특히 남자들이 적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 나라의 분위기가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을 많이 만들어 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용직, 노동자, 여자, 노약자와 같이 일반적으로 생각해서 약자에 속하는 사람들을 우리 나라에서는 대우해주고 보호해야한다는 분위기가 널리 퍼져 있는 것으로 알고 그렇게 느끼고 있다.
그런데 그 보호되어야 한다는 배려가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강제적인 성향을 띈다면 오히려 역차별을 받게되는 것이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재화의 구매자나 이용자가 정당한 대우를 요구하지 못한다.
노동자에게 사용자가 원하는 일을 시키지 못한다.
여자로서의 대우를 바라다 바라다 엉뚱한 요구까지 하는 여성이 발생하는 형국이다.
아이를 낳은 대가를 바라거나, 집 안일만 하는 여성이 스트레스가 많아졌다고 직장에서 돌아온 남편에게 퇴근후 집안일을 온전히 떠넘기는 것이 자랑이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피곤해서 버스 한켠에 앉은 젊은이에게 발길질을 하는 노인이 발생하기도 한다.

오늘은 차를 가지고 출근을 했다.
사람들과의 접촉을 줄이고 싶었다.
요즘은 내가 사람들때문에 지친 것 같다.
이런 글도 쓰고.

나 뿐이랴.
우리 모두 같이 사는 생활을 해 나가야하는데 부대끼면 소음만 발생하는 지금 분위기가 싫기는 모두 마찬가지리라.

내가 다시 우리 사회의 밝은 면만 보는 시기가 왔으면 좋겠다.
그리고 정중히 부탁하고 배려하겠다.
이제는 나를 낮추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