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원을 한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하루하루 삶의 기록이나 흔적이 남는 것을 내 눈으로 내 몸으로 느끼기 위해서다.
하루를 정신 없이 보내고 나면 허탈한 시간이 찾아오곤 했다.
화장실 가야하는 것도 잊고 열심히 이리저리 뛰어다니기는 했는데 무언가 남는 것이 없다라는 기분, 아니 사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였다.
열심 뛰고 무엇을 했는데, 왜.
왜 이 일을 내가 하는 것인지.
사람들을 돌보는 인류애적 사명을 가졌기 때문에?
설령 그렇다해도 남들은 고사하고 나도 믿지 못할 이야기다.
단순히 내가 선택한 직업으로서의 일이 이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라는 질문을 살짝 제쳐두고.(다시 따지기는 할 문제다)
이 일을 계속, 이왕이면 잘하고 싶은데 내가 원해서 하고싶게 하려면 어떤 방법이 좋을까?
병원은 대표 원장이 있고 대부분 사람들은 그 대표 원장을 통해 진료를 받기를 바란다.
기왕 좋은 교육과 트레이닝 과정을 거쳤다면 다양하고 많은 환자들을 보고싶지 않을까?
개원하고나서 주변 병원에서 엉뚱한 치료 과정을 거쳐서 오시는 분들을 많이 보게 되었다.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실소가 나오는 부분도 있지만 한 편으로는 그쪽 병원도 이해가 되고 답답해 하는 환자도 이해가 된다.
엉뚱한 치료를 하고 더욱 엉뚱한 치료비를 지불케한 병원들을 내가 욕해본들 환자는 불안감만 더 커진다.
역을 한다고 내가 명의로 등극하는 것이 아니다.
일단 명의 등극은 몇 년 후로 미루고 나는 일단 병원에 신뢰를 잃은 환자를 나아지게만 하면 어느 정도의 보람은 가지고 가는 것이다.
여기서 내가 대표원장이 되고 나서 달라진 점은 내 병원에서 나아진 환자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나는 이 병원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이제는 내게 큰 의미를 가진다.
내 병원에서 나아진 환자들이 쌓이면 쌓일 수록 그 의미는 불어나는 것이다.
요즘처럼 병원을 힘들어하는 시대에 예전 할아버님의사들처럼 부자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병원만 유지되고 유지되는 과정에서 훌륭한 직원들에게 좋은 급여를 줄 수 있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실제 그렇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를 배가 시키기 위해 의사를 한 명, 또 한 명 영입하는 것이고 어느 정도 한계가 발생하면 병원급으로 규모를 키울 뿐이다.
더구나 요즘엔 의원급에서는 수술을 못하게 하려는 움직임도 있으니, 이 중요한 과도기를 나는 잘 넘겨야하는 것이다.
나의 지극하 개인적인 만족감 문제로 시작한 개원은 나의 가족, 직원, 그 직원들의 가족까지 챙겨야하는 일로 발전했다.
오늘의 하루가 어제의 하루보다 조금씩 더 좋게 발전하는 것이 내가 지금 이 일을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