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하루는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빠르게 지나간다.
일단 9시라는 시간의 경계선에 들어서면 주위를 살펴볼 겨를이 없을 정도로 정신이 없어진다.
외래 환자가 끊임 없이 오는 상황도 있지만, 대기 환자가 없는 상황에도 병동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
자칫 병동 환자의 요구를 듣기만 하고 실행하지 않고 지나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점심 시간에는 차라리 점심을 먹지 않고 혼자 생각하거나 눈을 감고 쉬는 시간으로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요즘 내 바람이다.
배도 그렇게 고프지 않다.
하지만 내가 점심을 먹지 않으면 식당 아주머니부터 직원들이 방문을 두드려서 재촉을 한다.
그것이 번거롭고 괜히 직원들에게 부담이나 걱정을 얹어주는 행동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식당을 찾는다.
2시 전까지 남은 시간은 진료 침대에서 누워 잠깐 눈을 붙인다.
이 잠깐의 시간은 휴식도 되고 오후의 충전이 되어 준다.
다만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까지는 되어 주지 못한다.
그저 지친 나를 쉬게 해주는 것이다.
이것 마저도 점심 시간 수술이 생겨 버리면 갖지 못하는 귀중한 시간이다.
다시 2시의 출발선에 서면 달리기 시작한다.
책상 위에 울리는 전화는 대부분 받지 못한다.
아파트 주차장에 세워 놓지 못해 아파트 밖 담벼락에 세워 둔 차가 견인 될 뻔한 것을 경비 아저씨께서 구해준(?) 적이 있다.
이 사실을 알리고자 여러 차례 전화를 주신 적이 있는데 이것 또한 받지 못했다.
그 날 저녁 경비실 앞에서 경비 아저씨의 성난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해되는 상황이었다.
다만 난 열심히 생활하고 돌아온 것 뿐인데 집 사람도 아닌 다른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이야기를 해야하는 내가 불쌍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게 계속 말씀을 전하시는 그 분께도 미안했다.
저녁 회진까지 마치고 운동할 수 있는 시간이면 지하철역 근처의 헬스장을 찾는다.
루틴 운동을 마치고 골프 스윙 연습을 한다.
언제 필드에 나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준비를 해보려는 것이다.
지금 같은 상황이면 나갈 일이 없을 것 같다.
주말, 특히 일요일은 밀린 집안 청소와 떨어진 식자재를 사놓고 소파에 앉아 영화를 보는 일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여유가 있거나 집안이 정리가 잘 되어 있다면 나도 나가볼 요량은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나를, 내 주변을 닦고 정리하고 정비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루가 흘러가기 때문에 나의 온전한 시간은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시간 뿐일 수 밖에 없다.
그래도 나를 정리하고, 돌아보고, 명상도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고마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도 짧은 시간의 감사함을 표하고 준비선에 서기 위해 나갈 준비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