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에 진료를 마치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지하철역에 인접해있는 헬스장에서 운동을 한다.

몸을 건강하게 한다는 목적보다는 웬지 운동을 안하면 몸이 더 아프고 피곤하다는 개인적 느낌 때문이다.

단순 기본 프로그램만 하면 집 앞보다는 상당히 저렴하지만 거기에 웃돈을 얹어 골프 연습도 하기로 했다.

봄부터는 주말에 운동을 나가야 마음도 몸도 가벼워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래도 예의상 연습은 해야 맞을 것 같기도 했다.

또 주말에는 집 근처 중학교 운동장에서 농구를 한다.

농구공을 던지고 그리고 튀기고 온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오로지 혼자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몸을 피로하게 만든 다음 쉬는 느낌이 좋다 라면 약간 변태적일까

녹초가 될 때까지 몸을 소진 시키고는 싶지만 회복이 덜 될 것 같은 불안감에 매번 ‘적당히’ 뛰고 온다.

골프공으로 연습할 때, 농구대 그물에 공을 던져 넣을 때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공을 치는 것, 공을 바구니에 넣는 것 같은 ‘목표한 것’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마음가짐이나 상상은 그 이상이어야 했다는 것이다.

내 몸은 내 체력을 너무 미리 아껴버리는 경향이 강하다.

내 시선이 머무는 곳이 있다면 그곳 조금 못 미쳐 힘을 비축시켜 놓고 만다.

특히 퍼팅을 할 때, 그리고 농구공으로 백보드를 맞춰서 들어가는 것이 아닌 직접 바구니를 목표로 던졌을 때

그 때 확연히 모자람을 느낀다.

조금 더 힘을 쓴다고 했을 때 비로소 목표한 곳에 닿는 과정을 계속 지켜보게 된다.

삶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아닐까?

‘이만하면 됐다.’

내 머리에선 계속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하고자 하는 의지’보다 ‘안 하고자 하는 의지’가 충돌할 때

‘안 하고자 하는 의지’가 몇 배 더 강하다.

일단 내 안의 나는 그렇다.

어떤 생각을 하면 교활한 내 머리 속에서는 ‘안 하고자 하는 의지’가 더 크게 작동하는 것이다.

‘이만하면 되지 않겠어?’

그렇기 때문에 나는 ‘생활의 루틴’을 만들어 놓고 그저 생각 없이, 정말 생각 없이 그 루틴을 따라만 가는 생활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생각이 나를 속이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 교활한 내 속의 나를 억누를 수 밖에 없다.

항상